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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

#11 종교(기독교)_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 (유기성)

 

이 책의 저자인 유기성목사님은 매일 페이스북에 올리시는 '영성일기'를 통해 알게되었다. 워낙 설교를 잘하시기로 유명하신 목사님이라 평일에 설교말씀도 종종 듣고있는데 설교가 너무 좋아서 책까지 찾아서 읽게되었다. 솔직하면서도 핵심을 짚는 목사님의 방식이 너무 마음에 든다. 팀켈러나 CS루이스 같은 외국목사님의 책은 나에게 조금 어렵지만 이 책은 정말 쉽게 술술읽었다. 초신자들이 읽어도 좋을 것 같고, 신앙의 깊이가 없는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진정한 회개란 무엇일까요? 회개란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악을 행하는 것이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 것이아니라 진정한 회개입니다. 우리에게 죄를 자백하기 원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겨우 자백하는 것이 회개입니까?"라고 의문을 나타내는데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시인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 나는 회개란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지은 죄를 똑같이 다시는 짓지않아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기성목사님은 죄를 자백하는 것만으로도 회개라고한다. 나의 잘못이 잘못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 그것이 회개라는 것이다. 오늘부터 나의 하루를 돌아보며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하는 내가 되어야겠다. 

 

 

믿음을 갖게 된 소녀는 고모와의 관계가 좋지 앟은 것이 영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학생회 예배에서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라는 말씀이 소녀의 마음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렇구나! '내'가 고모를 만나니까 안 되는 거야.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데, '예수님'이 고모를 만나주시면 되겠구나!"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현관 앞에 선 소녀는 현관 손잡이를 잡고 기도했습니다.

'예수님, 제가 고모를 만나면 오늘 또 싸울 것 같아요. 예수님이 고모를 만나주세요. 저는 죽었고 예수님이 제 안에 살아 계시잖아요.'

그렇게 기도하고 문을 열자 역시나 고모는 벼르고 있었다는 듯이 소녀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소녀의 눈에 야단치는 고모의 무서운 얼굴은 안 보이고, 어느새 주름이 지고 흰머리가 난 늙은 고모의 모습이 들어온 것입니다. 조카들 때문에 결혼도 못하고 쓸쓸히 늙어가고있는 지치고 여윈 고모의 모습이 보인 것입니다. 소녀는 너무 마음이 아파 고모를 와락 끌어안았습니다. 조카가 자기를 끌어안고 엉엉 울자 고모의 가슴에서 응어리 진 것들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날 예수님께서 고모를 깊이 만나주셨고 그 후 고모 역시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 이 소녀처럼 나도 아빠와 동생을 전도하고 싶었지만 전도가 잘 되지않았다. 이 이야기를 보고나니 지금까지 나도 내가 가족을 만났기때문에 전도가 되지않았던 것 같다. 내가 아닌 예수님이 우리가족을 만났다면 아빠와 동생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을지도모른다. "예수님, 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 아빠를, 제 동생을 만나주세요."

 

 

어떤 사람이 믿음으로 사는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기준이 있습니다. 바로 염려에 대처하는 태도를 보는 것입니다. '믿음'의 반대말은 '불신'이 아니라 '염려와 근심'입니다.

갑자기 천만 원이 생겼다고 가정해보십시오. 그러면 천만 원에 해당하는 만큼의 염려가 싹 맡겨집니다. 그만큼 우리가 돈의 능력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돈을 믿고 사는 것은 아닙니까? 그러면 하나님을 돈으로 환산해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감히 계산할 수 없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가 되시며 항상 나와 함께하십니다. 이렇게 고백하면서도 돈 십만원, 백만 원어치의 걱정거리조차 내려놓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과연 이것이 정말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일까요?

-> 믿음의 반대말은 염려와 근심이라니...ㅎㅎ 나는 염려와 근심이 너무나도 많다. 그런데 목사님 말씀처럼 천만원이 생겼다고 가정하면 나의 염려와 근심은 어느정도는 사라질 것 같아서 너무 마음이 아프다. 그럼 나는 하나님이 아니라 돈을 믿고 살았다는 말인가...? 나의 염려와 근심은 모두 하나님안에서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인데 나는 왜 이렇게 이 세상 것에 목매여서 아둥바둥 살아가고 있었던 것일까. 지금이라도 나의 모든 염려와 근심을 내려놓고 하나님만 바라보자!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기에 나에게 두려움이란 없다!

 

 

사람들은 마치 먹고 마시고, 학교 가고, 취업하고, 집 사고, 차 사고, 시집 장가 가려고 태어난 것처럼 삽니다. 이 일로 염려하고 애쓰고, 기뻐하고, 슬퍼하며 삽니다.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때'를 전혀 준비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도덕적으로 살고 있을지 몰라도 어쩌면 세상에 푹 빠져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이 점을 더 심각하게 염려하고 계십니다.

 

 

지금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도저히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 있습니까? 이렇게 고백해보십시오.

"주님, 나는 죽었습니다! 주님 맺힌 마음을 풀지 못하는 나는 죽었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옹졸한 나는 예수님과 함께 이미 죽었습니다."

"나는 죽었습니다"가 사랑입니다.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열매이며 진짜 예수 믿는 것입니다. 사랑하라는 말은 손해 보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오직 사랑만 하며 살 수 있는 복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목차>

Chapter 01. 십자가 능력을 경험하면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한 인생이 된다

Chapter 02. 하나님께 자백하고 죄 씻음 받는 삶으로 죄를 이겨나간다

Chapter 03. 하나님께 내 자아를 바쳐야 나는 죽고 예수가 산다

Chapter 04. 온전한 순종이 성령 충만의 능력이다

Chapter 05. 염려하지 않는 진짜 믿음을 발휘하라

Chapter 06.하늘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천국 소망에 눈뜬다

Chapter 07. 사랑만 하며 사는 축복을 누리는 인생을 살라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