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와 글쓰기

2017) 에세이_여행이라는 참 이상한 일 (한수희)


이 책을 읽고 여행에 대해서 제대로 고찰한 책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 한 달동안 유럽여행을 다녀와서 여행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여행다니는 동안에는 그렇게 힘들고 빨리 집에가고 싶더니 집에와서는 왜 그 힘든 여행이 다시 가고싶은 것일까? 그런데 이 책에서 그런 생각들에 대해서 명쾌하게 정리해주어 내 의문들이 모두 풀렸다. 나는 머릿 속에 생각은 정말 많은데 그것을 말로 잘 풀어내지 못한다. 하지만 한수희 작가는 마치 내 머릿속에 들어온 것처럼 내가 생각했던 것을 술술 풀어낸다. 작가란 이런 것인가보다. 생각을 말로 풀어내는 사람. 나도 언제쯤 내 모든 생각들을 말로 다 풀어낼 수 있을까? 그 날을 기대해본다.


내가 그들처럼 살게 될 일도, 그들이 나처럼 살게 될 일도 없을 것이다. 운이고 복이고 상관없이, 그저 자기 인생을 사는 것뿐이다. 우리는 잠시 끄라비라는 도시의 공항에서 만났다가 헤어질 사람들이다. 심지어 그들은 나를 기억조차 하지 못할 것이고, 나도 거리에서 그들을 마주친다 해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때때로, 나는 세상의 여기저기에서 내가 살아보지 못한 인생을 스쳐 지나간다.

-> 여행을 가면 왠지 나와 생김새도 다르고 다른 언어를 사용사는 사람들이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닌 것 같아 보일때가 있다. 사람이 한번 스쳐지나가기만해도 인연이라는데,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그들을 스쳐지나간다는 것은 정말 로맨틱한 일인 것 같다.


이왕 망한 인생, 잠시라도 다르게 살아보고 싶었다. 일도 하지 않고 공과금도, 대출이자도, 보험료도, 세금도 내고 싶지 않았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싶었다. 빈둥대고 싶었다.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싶었다. 하기 싫은 것은 하기 싫었다. 하기 싫은 것을 주로 하면서 살아왔으니, 2주 동안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는다고 천벌을 받을 일도 아니었다. 우리는 달아나는 게 아니었다. 새로운 공기를 마시고 새로운 빛을 쬐고 새로운 바람을 맞고 새로운 시야와 새로운 각도를 얻는 것, 그것들을 안주머니 깊이 품은 채로 집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전부였다.

-> 이게 바로 여행을 가는 이유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마셨던 공기와는 다른 새로운 공기를 마시고 새로운 빛을 쬐고 새로운 바람을 맞고 내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야와 새로운 각도를 얻는 것, 이거 하나면 여행을 가는 이유는 충분하다. 새로운 것을 경험한다는 것, 내가 지금까지 본 것이 아닌 다른 것을 볼 수 있다는 것,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 여행을가는 이유에 대해서 저자가 정말 명쾌하게 잘 설명하였다.


상처 입지 않는 어른스러운 상태 밑에는 오래전 받은 상처의 망이 깔려 있다. 이것은 멀리서 보면 웃음이 나올 정도로 하찮은 것이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죽고 싶을 정도로 심각한 것이다. 코끼리 가죽을 가진 어른이 아니라 피부가 얇은 아이가 입은 상처이기 때문에.
- 알랭드보통, "너를 사랑한다는 건"


여행을 할 때 나는 거의 누워 있다. 어딜 잘 가지도 않고 뭘 잘 하지도 않는다. 그저 적당한 장소를 찾아 눕거나 널브러져 있다. 누워서 맥주를 홀짝거리면서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한다. 한번 누우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게 내가 여행에서 배운 전부인지도 모른다. 누울 줄 아는 것. 누워 있는 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

->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여행을 가서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 같다. 이왕 시간내서 여행온거 뽕을 뽑아야 한다면서 쉬지도 않고 이곳저곳 더 많은 것을 보기위해서 돌아다닌다. 많이 보고가지 않으면 이 먼곳까지 여행온 것에 대한 돈과 시간이 아깝다며 죄책감을 가지고 쉬지 못한다. 쉬지 못하였으니 휴가가 끝나고나서 일터로 돌아오면 더 힘들어진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건 진정한 여행이 아니다. 누울 줄 아는것, 누워 있는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 이게 진정한 쉼이 있는 여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정한 여행자라면 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에서도 만족해야만 했다. 맥도날드 따위는 가면 안 됐다. 길바닥에 주저앉아 싸구려 볶음국수를 퍼먹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진정한 여행자였다. 에어컨도 없는 기차 삼등칸의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찜통 속에서 고문이라도 당하는 것 같은 10여 시간을 기어이 이겨냈다면, 그거야말로 진정한 여행자였다. 그러니까 나는 고행이라도 하는 것 같은 여행을 진짜 여행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실은 에어컨이 나오는 쇼핑몰과 세븐일레븐을 좋아했다. 결국 나는 진정한 여행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바보 같지만 그 사실이 언제나 나를 울적하게 만들었다.

-> 혼자서 여행할 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진정한 여행자라면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면 안됀다. 고행이라도 하는 것 같이 힘들어야지 진정한 여행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진정한 여행자는 개뿔! 정말 바보같은 생각이었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 이게 진정한 여행이 아닐까하는 생각이든다.


실제의 세상은 지도나 약도 속의 세상과는 달랐다. 그것은 처음 우에노역 출입구를 빠져나왔을 때 맞닥뜨린 풍경과 비슷한 곳이었다. 아무리 약도 속 경로를 유심히 들여다보았어도, '출입구를 나와 직진한 후 우회전해서 다시 직진, 그리고 왼쪽'이라 수십 번을 외웠어도, 실제의 길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그 길을 가기 위해서 나는 그 길 위의 수많은 것들에 상처받지 않고, 놀라지 않고, 번뇌하지 않고, 의연하게 통과해야만 했다. 그럴 때 깨달음과 교훈 같은 건 중요하지 않은 건지도 몰랐다. 

-> 혼자 여행을 할 때 유심을 사지 않고 아날로그로 여행을 해서 약도를 보면서 많이 다녔었다. 약도를 보고 가면서 속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약도에 보이는 길은 단순하고 쉬워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도 약도와 비슷하다. 쉬워보이지만 절대 녹록치 않은 곳 그런 곳이 바로 세상인 것 같다. 그 곳에서 나는 목적지를 가기 위해서 돌아가기도 하고 지름길도 가기도 하면서 길을 찾아가야 한다.


나는 문득 깨닫는다. 나는 그 모든 익숙한 것들로부터 떠나고 싶어서 떠난 것이고, 낯선 나라에서 죽도록 고생을 한 후에 이제 그 모든 익숙한 것들에게로 다시 돌아가려는 것이구나. 어쩌면 그것이 바로 여행이라는 것이겠구나.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내가 살지 않는 곳에서, 나의 일상을 구축하고 또 그것을 말끔히 철거하는 것을 나는 좋아한다. 그때 나의 일상은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나는 말 그대로 집도 절도 없는 처지다. 가족도, 친구도 없다. 회사에 나가지도, 학교에 다니지도 않는다. 해야 할 일도 없다. 나는 오로지 내가 원하는 대로 이방인으로서의 나의 특별한 일상을 쌓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그렇지. 돌아갈 곳이 없다면, 그것은 여행이 아닌 거지.

-> 여행은 정말 특이하다. 익숙한 것들로 부터 떠나고 싶어서 떠났지만, 낯선 나라에서 죽도록 고생하다가 익숙한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여행이다. 내가 있는 곳이 얼마나 소중하고 안전한 곳이었는지 깨닫게 해주는 것. 그 깨달음을 알기위해서 먼 곳까지 고생하러 가는 것인가보다. 익숙한 곳에만 있다면 내가 있는 곳이 얼마나 감사해야할 곳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